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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은 태릉보다 일반에게 더 알려져 있고 더 유명하다. 이 태릉선수촌은 태릉 능역을 잠식,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도 임대료 한 푼 내지 않는 공짜다. 하기야 조선왕릉 능역을 공짜로 무단 사용하는 곳이 한두 군데도 아니고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니 새삼 들춰봐야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는다. 문화재청은 인수과정에서 말이 많던 한국사격진흥회가 운영하는 사격장과 선수촌, 이 두 곳이 나가면 태릉을 원상복구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신만이 알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국가대표선수들이 모여 있는 선수촌이나 총소리가 나는 사격장이 들어선 것은 문정왕후의 드센 기와 발복 관계가 있나 싶다. 태릉을 다니다 보면 쿵쿵거리는 총소리가 들리고 태릉에서 마주 보이는 앞은 화랑대 육사가 자리잡고 있어 보통 터가 센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대윤, 소윤의 싸움과 을사사화 1545년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죽자 12살에 왕위에 오른 13대 명종은 8년 간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는다. 인종이 죽자마자 중종의 계비이며 인종의 모후 장경왕후 오빠인 윤임과 문정왕후 형제인 윤원로, 윤원형의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같은 파평 윤씨인 대윤(大尹) 윤임과 소윤(小尹) 윤원형 간에 벌어진 이 정국은 왕의 외척 두 윤씨가 공존할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치러야 할 과정이었다. 경원대군(명종)이 태어나자 대윤은 세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김안로를 시켜서 문정왕후를 몰아내려 했었고 김안로에 의해 윤원형 형제는 실각했었으니 문정왕후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문정왕후를 몰아내려던 김안로는 중종에게 사사 당했고 인종이 즉위하자 대윤은 정권을 잡았으나 인종마저 일찍 죽고 문정왕후가 정국을 틀어잡았으니 결과야 뻔한 일이었다. 조선의 4대 사화 중 하나인 을사사화는, 윤임이 인종이 죽자 봉성군(중종의 8남)을 추대하려 했다, 계림군(성종의 3남)을 옹립하려 했다는 소문을 퍼트린 윤원형의 끈질긴 무고였고 소윤이 획책한 대옥사였다. 피비린내 진동한 을사사화가 벌어진 지 2년 후인 1547년 9월, 소위 '양재역 벽서' 사건이 일어난다. 양재역 벽서란 '위로는 여왕, 아래로는 간신 이기가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을 그대로 서서 기다리게 되었으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한가'이라는 익명의 벽서였다.
을사사화 이래 윤원형 일파의 음모로 화를 입은 조정대신들은 100여 명에 달해 정적을 완전히 제거한 윤원형 일파는 조정을 장악했다. 문정왕후와 보우 자신의 형제로 조정을 채운 문정왕후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아들 명종이야 마마보이였으니 어머니가 무서워 벌벌 떨었고 국정은 윤원형 일파의 손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명종 즉위 후 문정왕후가 죽기까지 20년 동안 문정왕후는 왕을 능가한 권력을 휘둘렀고 윤원형의 권세는 하늘을 찌른다. 마음대로 국정을 주무르던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사림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도첩제를 실시해 선교 양종에서 각각 30명의 승려를 뽑았으며 전국에 300여개 절을 공인한다.
하여간 이처럼 시끄러웠던 도첩제가 실시되자 3년마다 시험을 봐서 문정왕후가 죽기까지 15년 동안 다섯 번 동안 이 승과에 합격한 승려가 4천여 명에 이르렀다. 말은 정원 30명이었지만 아예 무시하고 정원의 10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벼슬아치 승려를 양산했다. 도첩제로 임진왜란에 공을 세운 승려 유정과 휴정이 발탁되기도 했다. 보우에 대한 평가는 조선왕조실록은 요승(妖僧)으로 규정짓고 있으며 불교계에서는 선교 양종을 부활시킨 순교승으로 추앙해 극과 극을 달린다.
보우에 대한 문정왕후의 지극한 신임은 조선조에 유래 없는 승려 병조판서까지 만들어냈다. 숭유배불 정책이 기본인 유교국가에서 승려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어 병권을 잡은 해괴한 인사였으니 유생들의 반대와 증오는 클 수밖에.
당나라의 여황제 측천무후는 나라를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지만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권세를 휘두른 왕비였던 문정왕후는 조선을 말아 먹는 권력을 남용했다. 실제로 문정왕후 이후 왕권은 형편없이 축소됐다. 문정왕후가 죽기를 기다렸던 성난 유생들은 회암사로 몰려가 불상의 목을 자르고 절을 불질러버렸다. 불교를 중흥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명종은 어머니의 유언을 무시하고 깊은 산 절로 도망친 보우를 체포한다. 보우를 당장 처형하라는 성난 여론이 빗발쳤다. 율곡 이이는 이를 만류했고 명종은 보우를 제주도로 유배를 보냈지만 여론을 살피던 제주목사 변협에 의해 살해당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의 악녀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의 가을 숲은 아름답다. 태릉에 올라서면 문정왕후의 위세를 보여주듯 거대한 문인석과
무인석이 눈에 들어온다. 3.4m 정도 되는 커다란 석상은 마치 문정왕후를 보는 듯 오만과 권세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 오마이뉴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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