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누가 '반역자 장보고'를 부활시켰나

거자필반(去者必返) 2006. 1. 14. 12:53
누가 '반역자 장보고'를 부활시켰나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
▲ KBS 드라마 <해신>은 평균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장보고를 일약 '국민스타'로 만들었다. 왼쪽이 장보고(최수종 분), 오른쪽이 염장(송일국 분). (KBS 제공)

9세기 인물 '장보고'가 21세기에 부활했다. <삼국사기>는 그를 "모반을 획책한 반역자"라고 했다. <삼국유사>는 그를 "반란을 획책한 미천한 해도인(海島人. 섬놈)"이라며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약 1200여년 만에 부활할 수 있었을까.

KBS 드라마 <해신>, 장보고를 국민스타로 만들다

청해진대사 장보고를 21세기 한국의 '국민스타'로 되살린 일등공신은 KBS 드라마 <해신>이다. 오는 25일 51회를 끝으로 막을 내릴 <해신>은 약 30%대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방을 점령해왔다.

강일수·강일택 PD의 연출은 장보고 전문연구가로 꼽히는 김성훈 상지대 총장으로부터 "드라마 내용의 약 90%가 허구지만 10%의 역사적 사실만으로 장보고의 진정성을 해치지 않고 있다"는 격찬을 이끌어냈다.

연출진은 "장보고를 단지 비열한 반역자로 기록하는 것은 이긴 자들에 의한 편파적 기록"이라며 왜곡된 역사의식에 대한 도전장을 던졌다. "장보고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식을 던져주고 싶다"던 이들의 기획의도는 현재까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최수종(장보고 역), 채시라(자미부인 역), 송일국(염장 역) 등 출연배우 연기는 마치 이들이 <해신>을 위해 태어난 듯 착각을 줄만큼 훌륭했다. 채시라는 비난받기 좋은 악녀 역을 하면서도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송일국은 '동양의 부르터스'다운 비애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주연배우인 최수종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해신>은 최수종으로 집중될 수 있는 시선을 다른 배우와 얘기로 분산시키고도 시청자 눈을 붙잡아두는데 성공했다. 사랑을 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간 김아중(백하진 역),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비열함을 발산하는 강성필(중달 역) 등 조연배우의 물찬 연기는 드라마의 단조로움을 깨는데 한몫 했다.

특히 <해신>은 삶의 반전을 꿈꾸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했다. 노예라는 밑바닥에서부터 신라정권의 실세로까지 성장한 장보고의 파란만장한 일생 자체가 반전을 꿈꾸는 21세기 한국인들에겐 큰 밑천인 셈이다.

원작자 최인호, 두 가지 오해 풀고서야 소설쓰기 시작

장보고가 검투사였다고?
잠깐! 드라마 속 허구의 장치

드라마 <해신>은 높은 인기만큼이나 허구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장보고, 염장 등 극중 인물 미화 논란이나 현대적 복장 문제도 그같은 경우이다.

장보고는 드라마에서 한때 노예검투사가 된다. 남을 죽여야 자신이 살아남는 절대절명의 운명. 그러나 장보고는 노예검투사가 아니었다. 동양에서 노예검투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동양에선 사병이 존재했을 뿐이다. 물론 이들이 세력다툼을 하며 치열하게 싸우긴 했다. 노예검투사는 서양에만 존재했다.

드라마를 보면 중국 양주에 눈 내리는 장면이 목격된다. 양주는 눈이 '펑펑' 내리지 않는 곳이다. 눈이 간혹 오긴 하지만 쌓일 정도로 양주에 눈이 내린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능란한 연출은 시청자들이 양주의 사계를 따지기보단 극적 전개에 더 촉각을 세우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이 공(功)은 원작자인 소설가 최인호에게 돌려야 할 몫 같다. 그가 7개국 30만km를 발품을 팔며 역사적 고증과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던들 드라마 <해신>의 성공은 담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애초 최인호는 장보고에 대한 소설을 기획하고 있지 않았다. 이 기획을 처음으로 제안한 곳은 재단법인 장보고기념사업회였다. 최인호는 한 심포지엄에서 "장보고에 대한 두 가지 오해를 풀고서야 장보고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두가지 오해는 장보고가 반역자라는 것과 그가 과도한 욕망을 지닌 인간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었다.

최인호의 이런 오해를 풀어준 것이 장보고 유적을 따라 돌아다닌 7개 나라, 30만km에 이르는 답사여정이었다. 그는 이 여정을 마치고 "장보고는 청해진인도 아니고 신라인도 아닌 1200여년 전의 위대한 세계시민"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중앙일보>에 2002년부터 소설 <해신>을 연재했다.

최인호에게 장보고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답사여정을 잡아주고 자료를 준 이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실패한 반역자 장보고'를 오늘날의 '해신 장보고'로 부활시킨 진정한 공로자이다. '장보고 해양경영사 연구회'를 만들어 활동했던 교수들이다.

진짜 공신들 : 김성훈·손보기·김문규 등 학자들

김성훈(상지대 총장), 손보기(연세대 명예교수), 김문규(숭실대 명예교수) 등 학자들의 십여 년에 걸친 피나는 여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해신>은 없었을 것이다. 원작자 최인호마저 농담반 진담반으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나"를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였으니 이들의 공로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들은 중국과 수교가 이뤄지기 전인 89년부터 열 다섯차례에 걸쳐 장보고 유적을 따라 중국을 답사하며 산동성·절강성 등에서 23곳의 신라방과 신라촌을 찾아낸다. 그리고 세 차례에 걸쳐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해 장보고를 신화가 아닌 역사적 실체로써 학술적으로 고증한다.

특히 이들은 1993년 한국 정부가 3월을 '장보고의 달'로 지정하자 "1100여년 만에 장보고가 '복권'된 것"이라며 감격했다. 1천년여 년 동안 실패한 반역자로 낙인찍혀 왔던 장보고를 역사적으로 복권시켰다는 것이다.

1999년 장보고 재단이 설립되기 전까지 십여 년간 한·중·일을 돌며 장보고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학자들. 이들의 숨은 노력 덕분에 드라마 <해신>은 끝나도 장보고는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김성훈 총장 "장보고의 무늬만 배우지 마라"
9세기 장보고가 21세기 우리에게 말하는 것

 
안현주
장보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노력을 인정받아 명예완도군민 1호가 된 김성훈 상지대 총장(사진)은 "장보고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단언한다. 김 총장은 "대륙지향보다 바다를 지향할 때 나라가 산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장보고는 정치와 경제분리, 민간주도 모델, 복합상사 시너지 효과 등 오늘날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앞서 실천한 인물"이라며 "그 핵심은 민간주도"라고 역설했다. 즉 "관 주도·정부 주도로는 동북아중심국가 건설은 성공할 수 없으며 그런 식의 동북아중심 국가론은 정권과 함께 수명이 끝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김 총장은 "장보고의 무역으로 불교와 문물, 차나무와 도자기 등이 들어왔다"며 이는 장보고가 "종교와 문화, 민생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총장은 "기업인들이 교육문화와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을 장보고는 가르치고 있다"며 "그럼에도 요즘 기업인들이 부를 대물림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질타했다. 김 총장은 "기업인들이 장보고 무늬만 배우려 하지 말고 지위에 걸맞게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출처 : 블로그 > 캄보디아 비지니스 여행자 클럽 | 글쓴이 : 천풍/캄보디아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