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조선의 사대주의

거자필반(去者必返) 2006. 1. 14. 14:46





(태조 이성계)





(명나라 건국한 명 태조 주원장)

 

 

조선이 건국한 이래 중국(명 시대)과 사대주의 정책의 맺었다는건 역사는 다 아실겁니다.

그 뜻은 임금과 신화 사이라는 것으로 중국이 임금 조선의 신하라는 것 입니다.

그 정책의 누가 먼저 폈을까요? 중국이? 

답은  : 조선입니다.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 하겠지만 외부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즉답은 조선입니다.

발생 의의 :  동북아에는 14세기 당시 큰 개벽이 일어 납니다.  중국은 원나라에 반란과 민심이 들끓고 한족의 중심과 종교로 일어나는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의 예고 하였고, 한반도 에선 북쪽의 오랑캐와 왜적이 살인과 약탈 방화를 저지르는 등 국토를 폐허로 만듭니다. 그 때 고려를 지키는 대표적 무장 둘이 있었으니 최영과 이성계(훗날 조선건국) .. 그 중 반도를 떠들썩하고 명성이 자자했던 사람이 이성계였습니다.. 수많은 오랑캐들의 무찌르는 전공의 세우고 우리 역사상 이순신 뿐만 아니라 불패신화를 세웁니다.. 고려 조정에서는 홍건적의 난으로 혼란하고 쉬쉬하다 싶은 위화도(요동지역)의 정복하라는 명이 내려 집니다.. ☜ 이까지는 잘풀림.

당연히 그 때 까지는 고려의 충직한 신화이자 장수로서 명으로 군사들의 이끌고 갑니다..

그러나 그 당시 계절이 여름입니다..여름은 비가 많이오고 습해서 오래싸우기엔 접합하지는 않고 군량의 조달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으며 소국이 대국의 상국으로 모시고 섬기는게 옳다고 생각 회군의 합니다..(이것이 바로 위화도 회군.)  간추려서 ☞ 이성계가 승리해서 조선건국함 ㅋ

※ 지금의 위화도 회군 목적뿐아니라 그 후에 중국이 안정의 잡으면 고려가 한 행동의 알것이고 새시대를 창조하고 굳건한 명나라는 상대로 싸워서 질것이 비일비재한 상황 일것이고 한나라를 등지고 전쟁이라는 승패가 나뉘는 혈투에서 많은 고뇌를 했을 것입니다.

의의: 조선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전 이성계는 상국 (명나라)에 가서  조선이라는 칭호를 사용할 것의 말하고 직접 이성계가 글의 써 상국으로서 섬기겠다고 명나라 태조에게 글의 적습니다.

♨ 이정도는 역사실록이나 많은 역사서적에서 찾아 보실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대주의정책이라는 그 알맹이 속에는 오묘하고 아이슈타인같은 계산이 있었습니다.

실리주의와 국제외교에 정치적 성격이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초에는 조선의 조공의 받였다고 나오는데 중국 또한 조선에 더많은 선물의 줬고 양국간에 물자교환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압록강 넘어에는 여진족이 있었는데 중국과 손의 잡고 친명정책의 편다면 여진족같은 변방민족이 쳐들어 오기도 그렇고 커버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나라를 세우고 그 후 더 어려운 국가안정과 안녕의 위해선 군사적인 문제뿐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환경 등의 따져봐야 합니다.  몰론 이성계가 명의 상대로 사대주의정책의 편것은 사실입니다. 조선이 건국 된 이후  이러한 사대주의 라는 정책안에 숨은 큰 뜻이 있었다면 또다른 우리가 모르는 일이나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출처 : 블로그 > 당신의 그늘이 되어드리겟습니다~^^ | 글쓴이 : 경환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