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를 붙잡고 애무 사정하는 커플의 풍경

다음은 한국과 미국에 떨어져 살고 있는 등장인물이 국제 전화를 통해, 이른바 '폰섹스'를 하는 장면이다.
"그래 줘요. 당신이 벗겨줘요. 당신이 시키는 대로 내가 벗을 게."
"그럼 우선 팬티와 브래지어를 벗어."
"그럼 내가, 지금
잠깐만요. 알았어요……."
"그리고는 치마를 다시 입어. 나는 그 동안 담배를 좀 찾아봐야겠어."
담배는 바로 곁에 있었다. 나는 담배개비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응, 다 벗었어요. 이젠 치마를 입으라구요?"
"아아,
그건 내가 직접 벗겨주고 싶은데……."
"내가 다 벗었어."
"팬티는 어떤 팬티였나? 하얀 색 팬틴가?"
"연한
하늘색."
여자는 치마를 입느라고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땀에 젖은 몸에 얇고 짧은 여름 치마 한 조각만 입은 여자를 상상했다.
"브래지어도?"
"응. 아주 연한 하늘색이야. 푸른 색 치마를 입었거든. 늘 그렇게 색깔을 통일하지. 오늘은 다 블루
계통이네."
"당신이 팬티 이야기를 하자 난 벌써 사이펜만 해졌어."
"그럼 이전에는 사이펜보다 적었어요? 전화 받기
전까지는?
사이펜만 하다는 건 길이를 말하는 거죠? 설마 굵기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아하하."
"그럼. 당신은 어때? 치마를
입었나?"
"그래요. 다 벗고 치마만 다시 입었어요. 이젠 어쩌지?"
"치마를 걷어 올려."
"그래요. 치마를 걷어 올리고
손으로 만지고 있어. 당신은 뭘 하고 있지?"
"나도 만지고 있어. 마스터베이션 중이야."
"당신이 직접? 어쩌나…….
슬퍼라."
"곧 사정해 버릴 것 같애."
"벌써! 그럼 나랑 안맞잖아. 난 아직은 아냐. 준비가 안됐어요. 좀 전 자동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미칠 것 같았는데."
"당신이 만져줬으면 좋겠어. 당신 입술로 부드럽게."
"그걸 못해 주니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요.
나도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까
벌써 흘러내리네. 금방 샘처럼 흘러넘치네."
"흥분했어? 당신도 나처럼."
"아니, 아직 거기까진 아니야.
지금 난 내가 아주 부드럽게 당신을 어루만져주고 있다는
기분에 빠져 있어요."
"나도 역시 그래. 내가 만져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흐흐흐흥. 그걸 어떻게 알았죠? 난 지금 바로 그런
기분이야.
당신이 나를 만져주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내가 당신을 만져주고 있다는 느낌.
온몸으로 당신을 애무해 주고 있는 거야. 아주
친절하게. 내 손으로 하면서도 당신의 손길이 느껴져."
"나도 당신의 손길이 느껴져. 당신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이. 그래서 여자는 손이 고와야 하는가 봐. 당신의 고운 손이 지금 날
만지고 있어."
"그래요. 내 손을 곱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볼품 없이 길쭉하기만 한 손가락인데. 꼭 피아니스트나 첼리스트 손가락 같다는 소릴
들어요."
"생김새보담은 느낌이거든.
아아, 난 지금 당신이 내 사이펜을 입으로 애무해주는 생각을 해. 미칠 것
같아."
"그래요? 그랬으면 나는 마구 깨물어버렸을 텐데."
"깨물어줬으면 좋겠어."
"하하, 그러세요. 오늘은 어떤 팬티를 입고 있었어요?"
"그저 그런 팬티. 사각이고
고동색이랄까, 여러 가지 무늬가 있군."
할로겐 등 불빛에 팬티를 비추어보며 내가 설명했다.
여자가 자신의 흥분을 호소했다.
"아아, 난 이제 흥분했나봐. 더 빨리 해 줘요."
"빨리하고 있어. 같이 사정해. 같이 사정할 수 있겠어?"
"응?
어떡하는데. 전화로 다 해결할 수 있을까?"
"이제 어때? 흥분했어?"
"그럼. 벌써. 아까부터 그랬었는데. 흐흐흠... 잠깐만...
뜨겁다... 난 질속이 왜 이렇게 뜨거울까. 지금 이럴때만 뜨거운 건지 늘 뜨거운 건지 모르겠어."
"내 사이펜을 넣었다고 생각해 봐."
"그래, 그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흐흐흥, 그래서 가득찬 느낌이
들어요."
"그럼 이제 사정해. 나랑 같이. 자…."
"응. 아이, 근데 지금 난 충분히 젖긴 했는데, 응? 이게…이게…
뭐야.
전화로 한다는 게 익숙치 않으니까 어색해.
전화를 통해 당신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잘 안돼. 응?
아아…아아…하아아아….
난 안돼. 말을 많이 하면서 하니까 그런가?
우리가 쓸데없이 말을 해서 그런가? 아무래도 이런 방식으로는 직접적인 느낌을 대신하지 못할 것
같아. 마지막 순간에 안되네."
"그럼 이전에 나랑 사랑하던 순간을 생각해봐.
당신이 가장 좋았던, 가장 생각나는 장면이 뭐야?"
"당신이 내 목을 잡고
내 눈을 들여다 볼 때. 난 그런, 단순한, 천진난만한 눈빛이 좋아요. 서양 사람들처럼 당신도 참 정직한 눈빛을 가지고 있거든."
"그럼
그 순간을 떠올려 봐."
아아, 하고 여자는 금방 잠잠해졌다.
잠시 뒤, 여자는 기혼녀답게 여보…여보… 하고 누군가를 호명했다.
나도 사정했다.
정액으로 축축해진 손을 그대로 들고서 송수화기 저편의 여자를 불렀다.
여자는 막 잠에서 깨어난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
"그래요. 그 눈빛을 생각하면 너무 좋아요. 온몸으로 확 느끼게 되지.
난 그 순간 당신의 눈빛만 상상하면 흥분하곤 해요, 지금도.
언제나."
"아마 당신은 당신 눈을 바라보며 당신 속으로 스며들고 싶어하는 내 눈빛을 말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그런
눈빛…."
"맞아요. 하하하. 맞아요. 왠지 아세요?
여성의 성감대 중에 가장 민감한 것은 바로 공상이거든요."
행복한 원앙처럼 안온한 가정을 지키면서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쨌든 요동의 욕구가 묻어
있었다.
여자가 다시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날 생각하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한다는 당신의 말은 너무나 날 가슴아프게 하고 또 흥분하게 해요."
우리는 기껏 위성 통신망 속에서
욕정을 해결하고 있었다.
연재를 마치며
이상으로 세 개의 디테일을 소개하면서 나는 내가 『떨림 』을 통해 저항하고자 했던 장애가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그 대안의 방법으로써 요동과
우연, 그리고 여성성과 비정형을 제시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한가지 더, 최근 내 필명을 설명하면서 이 구차한 변명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내가 필명으로 사용하는 '마르시아스(Marsya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 정령(精靈)의 이름이다. 그는 피리의
명수로 음악의 신 아폴론에 도전하여 연주 시합을 벌이지만 억울하게 패배한 뒤 산 채 가죽이 벗겨지는 죽음을 당한다. 이로 인해 마르시아스는
죽음을 불사하고 신에 도전하는 예술가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디오니소스와 함께 현재 터키 동북방 지역에서 기원한 동방의
신으로 지상(地上)의 신이며 혼돈과 비정형, 그리고 여성성을 대변하는 존재다.
조화와 이성, 남성성의 대변자인 아폴론에 도전하여 패배하는 그는 영웅의 일대기를 펼쳐보이며 서양의 신화 속에 숨어 있다.『떨림』은 당연히
마르시아스의 사상을 자양분으로 하고 있으며, 마르시아스의 미의식은『떨림』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과 쾌락과 도취에 관해서도, 그
주체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유한성과 불완전성에 대한 저항의 한 방법으로 인간은 성이라는 행위를 이용한다. 성을 통한 쾌락은 결코
우행(愚行)이 아니며 이 궁구의 방법인 에로티시즘은 인문학의 바탕이 아닐 수 없다. 성이야말로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는 새로운 문명 전환기에
있어서, 탐구해야 할 인간 행위의 초기 조건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