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영종도와 운요호 사건

거자필반(去者必返) 2005. 9. 30. 13:22

 

고종 12년(1875 년)   9월

조선 서해안에서  중국 우장 근해까지의 항로연구를 위한 측량 임무를 받았던 일본군함 운요호는 식수가 떨어지자 이를 구하기위해 강화도를 거쳐 영종도를 들러 보충하고자 했다.

당시 영종 수비대는 사단급포대로서 서울로 이어지는 수로를 지키는 업무를 맡고있었으며

그 수비대장은    영종첨사 이민덕이었고 지금의 사단급인 500여명이 주둔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고

이 영종성 전투로  조선군은  35 명이 사망하였으며  

일본군은 2 명만이   부상하였다.

 

당시 운요호 함장은  井上良馨 소좌(소령급)이었다.

 

그의 일기(보고서)를  발췌 해본다.

승리자 입장에서의 기록이므로  참고해서 볼 필요가 있으리라.

 

 

1875년

9 월  19일   월미도앞 해상에 정박하였다.

9월   20일   매도 서북방향으로 항해 하였다

                강화 초지진근처에 도달했으나  항로가 좁고 암초가 많았다.

                작은 언덕에 군사 진용시설이 보였고 그 낮은 곳에 포대가 하나 더 있었다.

                주변에 상륙하여 음료수를 구하려고 성문포대앞을 가려고하자 종선보트를 향해

                조선군 측이 포를 쏘았다.

                조선의 무기는 포신 2 미터의  네덜란드식 구식 대포와 산탄종류였다.   

                                                                   (전 근대적 무기뿐이었다)

                갑자기 엄청난 포격을 당해   오후 4 시쯤 일단 정박군함으로 후퇴하였다.

 

9월  21일  강화 정산도 를 점령했다.

 

9월  22일  간헐적으로  영종성(현재의 구읍 포대)을 공격했다.

               조류에 따라 배를 진행시켜 상륙할곳을 발견하여 닻을 내렸으나 높은 돌벽으로

               되어있어 실패했다

               다시 보병부대( 유격대  56 명)가   2 척의 보트에 분승하여 접근했다.

               조선군은 맹열히 사격을 개시했다.

               거기서 일본병사 1 명이 탄환을 맞았다

               일본군은 포를 쏘면서  진군했다.

               성문 근처에 육박했지만  잠겨있어서 안으로 들어갈수가 없었다.

               그래서 3 명의  일본군 병사가  돌로 된 성벽을 기어 올랐다.

               이어서 문이 열리고 일본병사들이 성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들리는것은  총성과 비명소리 뿐이었다.

               구읍은  작은 섬으로 되어있어서 뒤쪽으로 돌아 퇴로를 막기위해 6 명의 일본군병사가

               석유통을 들고 뒷길로 갔다.

               (만세교가 월촌과 구읍사이에 있기 전에는 별개의 섬이었으며 영종본도로의 탈출을

                막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임)

               초가지붕인 조선가옥은 순식간에 불이 번졌다.

 

              성안에 있던 조선군들이 도망갈곳을 잃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마치 오리처럼 머리만이 해면에 떠돌아다녔다.

              결국 영종성포대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일본군은 사방에 널려있던 대포, 소총, 악기류를 모두 포획했다.

              성문위 누각위에 큰 북이 있었는데 파괴해 제거하였다.

              마루밑에는 조선 돈이 많이 비축되어 있었다

              호랑이 가죽을 비롯한 많은 진기한것들이 있었지만 모두 태워버렸다.

 

              성안을 점검해보니 노파와 아이들이 큰 짐을 메고 허둥대며 피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피해를 가하지 않았다.

              조선군의 도망자는 500 여명이었고  생포자는 16 명이었다.

              운요호 본함에서 병사들이 추가 상륙하여 성안에서 철포, 검, 창, 깃발, 군복, 병서,

              악기, 군사용품 등을 노획했다(대포 35문, 화승총130정

              성안은 모두 방화되었다.

             (현재 대포 36 문은 일본 九段坂上유치관에 진열되어있다)

 

             소,닭,돼지는 모두 교살해서 군함으로 가지고 왔다.

 

             성채(城채)가 방화되었다.

            활활타는 영종성을 등지고 일본보병대가 본함인 운요호로 철수한것은 밤 10시경이었다.

 

             빼앗은 소,닭,돼지를  바로 요리하여 승리파티를 열었다.

             가끔 인근 육지에서 공포를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9월 23일 오전 11시  작약도 앞 해상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운요호 모습

 

 


                                              포격중인 운요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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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과정을 훑어보면

강화도 초지진에서 최초공격이 개시되고   영종도 사건은 그 직후 야기 되었다.

그러나 영종도 전투가 가장 주효했고 격렬한 전투 였었다.

 

조선군의 사망자는 35 명이라고 기록하였으나 

도망갈곳을 잃어 바다로 뛰어들어 머리만 오리처럼 둥둥 떠다녔다는 그의 기록에서보면

더많은 조선군의 사망자가 이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특히 구읍앞에서 작약도 사이의 빠른 조류는 뛰어든 군인들이 다시 헤엄쳐 살아나기에는 대단히어려운 곳이기에 설득력을 더 갖게된다.

조선군 도망자가 500명이라고 한 대목도 의아심은 가나 구읍포대가 사단급부대이었던것으로 볼때   일본군의 신식무기와 화력에 초전에 손을 놓고  월촌방향의 영종모도로의 첨사를 포함한 전부대원의 후퇴가 있었던것으로 추측된다.

(조선군의 무기는 구식무기로서 대포알이 떨어지는곳이 고정되어있어 함선이 그 포탄이

 떨어지는곳으로 들어와야만 맞게되는 고정식이었으며 사거리도 대단히 짧았다.

 그 사실을 안 운요호는 그 위치를 피해   안전한곳에서  구읍을 향해 포격을 가했다 

 그외 무기는 산탄종류로 단거리로 적의 피해가 되지못했다.

 말그대로 활과 총의 싸움이었던것이다.)  

 

그리고 전투에 패한 조선의 입장에서 정확한 피해 사실을 자세히 기록하였다고 볼수도 없지않을까도 생각된다.

그 들의 추모제는 그후 1877 년까지  2년간만 열렸다고도  전한다.

 

 

결국

일본은 이 영종도포격전의 책임을 적반하장으로 조선측에 씌워  전권대사를 파견해서 힐문함과 아울러  무력을 배경으로 개항을 강요하였다.

이에 따라 양국 간에는 8 년후인 1883 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어 조선의 개국이 이루어졌다.

 

 

 

 

아픈 우리의 역사

잊고싶지만,  없었으면 하는 마음 절실하지만  어쩔수없는 돌이킬수없는 우리의 역사인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교훈으로 지금을 그리고 앞날을 준비 해야한다.

 

항상 열려 있어야하고,

준비된 힘이 있어야 하며,

필요시 대처할수있는 단합된 의식이 우리에게는 필요한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는 ,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 역사적 교훈의 바탕위에 지금을 살고 있는것인가?...

 

 


                          

                                                     송도 청양산에서 바라본  영종도, 월미도, 작약도, 강화도

 


                                                       

                                                        영종도  백운산에서 바라본 인천앞바다, 작약도, 구읍,


 
가져온 곳: [허허벌판]  글쓴이: beolpan 바로 가기